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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제목 : 일본역사기행 - (42) 히데다다와 이에미쓰 [2004/11/15]
히데다다와 이에미쓰



도쿠가와 바쿠후의 기초를 만든 것은 이에야스부터 3대 쇼군 이에미쓰에 이르는 기간이다. 2대 쇼군 히데다다(秀忠)는 세키가하라 전투 때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이에야스의 분노를 싸 한 때 후계자 자리에서 밀려나는 듯했으나 결국은 2대 쇼군에 오른다. 흔히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는 말을 하는데 사실 창업자가 스스로 일가를 이룬 반면 후계자들은 웬만큼
해서는 단지 운이 좋아 창업자의 공을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면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후계자들은 자신이 창업자 이상의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고자 때로는 무리한 사업을 벌이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실패하기 쉬운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히데다다는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냉철히 알고 있었던 인물이었던 것 같다. 그는 새로운 정책을 펴기보다 철저히 이에야스의 정책을 따르는 편이었고 이에야스 생전에는 그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하기야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이에야스가 쥐고 있었으니 그것만이 권력과 생명을 보존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3대 쇼군 이에미쓰(家光)는 히데다다의 장남으로서 쇼군에 취임한 이후 그는 곧잘 다이묘들 앞에서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쇼군이다"라고 호령하고는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미쓰가 쇼군에 즉위하게 된 경위는 그리 단순하지 않은데, 히데다다는 차남인 타다나가(忠長)를 편애하여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이때 이에미쓰의 유모인 가스가 쓰보네(春日局)가 퇴임한 이에야스에게 직접 호소하여 이에야스의 명으로 이에미쓰가 쇼군의 후계자가 된 것이다. 장남을 두고 차남을 후계자로 세우려 했던 것까지는 있을 수 있다 치더라도 일개 유모가 쇼군의 후계 문제를 놓고 이에야스에게 직접 호소했다는 것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데, 이 때문에 이에미쓰는 히데다다의 아이가 아니라 이에야스가 유모인 쓰보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아무튼 이런 우여곡적 끝에 어렵게 쇼군의 자리에 오른 이에미쓰는 다이묘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쇼군의 허락이 없이는 다이묘들 간의 혼인을 금지시키는 한편, 사킨고다이(參勤交代)라는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다이묘들이 일정기간동안 에도와 자신의 영지를 번갈아 가며 머물게 한 것으로 다이묘가 자신의 영지에 있을 동안에는 처자를 에도에 볼모로 머물게 해야 했다. 그 기간은 대개 1년이었지만 에도에서의 거리에 따라 길거나 짧기도 하였다. 아무튼 이러한 산킨고다이로 다이묘들은 매년 엄청난 비용을 들여 에도와 영지를 오가야 했는데, 이 때문에 일본의 도로 교통망과 상업이 발전하는 한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닛코(日向)의 도쇼구(東照宮)는 3대 쇼군 이에미쓰가 이에야스를 위하여 지은 진자로 이에야스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도쇼구는 바로 이에야스의 법명이다. 이에야스 사후 처음에는 그의 고향인 시즈오카(靜岡)에 유해를 묻고 도쿠가와 집안의 우지데라인 도쿄의 간에이지(寬永寺) 지금의 우에노코엔 안에 도쇼구라는 진자를 만들었다가 이에미쓰가 닛코에 화려
무비한 지금의 도쇼구를 짓고 유해를 옮겨왔다. 이에미쓰가 이토록 거대한 묘를 만든 것은 아마 쇼군가의 위엄을 높임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자는 의도였겠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후계자로 명한 이에야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에미쓰는 대규모의 행렬을 거느리고 도쇼구를 여러 차례 참배했는데, 이후 쇼군들은 최소한 한 번 이상 도쇼구를 참배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그러나 쇼군의 도쇼구 참배는 너무 비용이 많이 들어 후대의 쇼군들 가운데는 재정이 빈약해 참배하지 못한 자도 있다고 한다.
도쇼구는 건물과 내부의 화려한 채색으로 유명한데, 요메이몬(陽明門)은 호화의 극치를 이룬 조각과 화려한 색상으로 보는 이들을 압도하며, 이밖에도 신규우샤의 산자루(三猿) 즉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는 세 마리 원숭이 조각과 도쇼구 최고의 조각이라는 가라몬(唐門)의 잠자는 고양이 조각 등이 유명하다.


이에야스를 도쇼구에 모신 이에미쓰의 묘도 닛코에 있다. 다이유인(大猷院)이 바로 그것인데 정식 명칭은 린노지이에미쓰뵤다이유인(輪王寺家光廟大猷院)이다. 다이유인은 이에미쓰의 법명이다. 다이유인은 도쇼구를 모방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그 화려함은 오히려 도쇼구를 능가한다고 일컬어진다.

도쇼구가 있는 닛코 시는 도치기( 木) 현 서부의 뇨호야마(女峰山) 기슭에 위치하는데, 에도 시대 이후 후타라산진자와 도쇼구, 린노지 등의 몬젠마치(門前町)로 발전하여 왔다. "닛코를 보기 전에는 일본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지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절경으로 유명하다. 특별 천연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닛코 삼나무 가로수 길이 있으며, 닛코 국립 공원에 속하여 있다.
린노지(輪王寺)는 천태밀교를 창시한 쇼도(勝道)가 766년에 건립하여, 가마쿠라 시대에 특히 발전하였다. 품격있는 산부쓰도(三不堂), 승천하는 용 그림이 일품인 오고마도(大護摩堂), 보물전 등이 볼 만하다. 후타라산진자(二荒山神社)는 기복과 결혼에 영험이 있다고 일컬어지며, 마시면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는 후타라 영천이 있다. 뇨호야마 일대는 전체가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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