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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관리자
제목 : 일본역사기행 - (43) 상인 계급의 성장과 새로운 문화 기풍 [2004/11/29]
상인 계급의 성장과 새로운 문화 기풍

도쿠가와 바쿠후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오랫동안 전란이 없어지자 무력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게 되자 자연히 무사의 역할도 줄어들게 되었다. 게다가 가타나가리(刀狩令)로 무사가 직접 농민을 지배하기 어렵게 되자 무사들은 이제 무력과 군사의 담당자라기보다는 바쿠후 및 다이묘의 행정을 담당하는 관리로 변화되어 갔다. 무사의 역할 변화와 함께 새롭게 유력 계급으로 부상한 것은 바로 상인 즉 죠닌(町人)들이었다.
죠닌이란 성 안이 아니라 성 아래 마을 즉 조카마치(城下町)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신분제 질서 하에서 상인들은 공식적으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맨 아래층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업의 발달과 함께 상인들에게 축적된 경제력은 그들을 사회의 실질적인 실력자로 만들었다.
에도 시대에 특히 상업이 발달하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는 오랜 전쟁이 끝나고 장기간의 평화가 오자 생산이 확대된 것이다. 전쟁에 투입되었던 인력들이 생산에 투입되고 개간이나 농업 기술의 발달 등으로 생산량이 증대하면서 교환과 상업도 발달하게 된 것이다.

둘째는 화폐의 사용이 증가한 것이다. 고쿠다카(石高) 제도가 실시된 이후 모든 경제 활동은 쌀로 환산되었는데, 쌀은 부피가 크고 무거워 거래에 불편이 많았기 때문에 차츰 화폐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화폐의 사용은 거래를 용이하게 해 상업이 확대되었고, 신용이나 환전 등 금융활동이 함께 발달하게 되었다.
셋째, 산킨고다이 제도이다. 산킨고다이로 인하여 다이묘들의 지출이 크게 늘었을 뿐만 아니라 에도와 각지방을 잇는 전국적인 교통망의 발달은 상업을 용이하게 하고 특히 전국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음으로써 대상인들이 출현할 수 있게 하였다. 상업의 발전으로 원래는 다이묘가 사는 성 주변의 마을에 불과하였던 조카마치는 대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는데, 바쿠후가 있는 에도와 오사카는 전국적인 상업의 중심지로 크게 발전하였다.
상인들이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하면서 에도 시대의 문화는 자연 귀족이나 무사 중심의 고급 문화에서 상인들의 취향에 맞춘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문화로 변화하여 갔다. 에도 시대의 문화는 크게 게이죠·간에이 문화, 겐로쿠 문화, 가세이 문화로 구분하는데, 에도 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게이죠(慶長)·간에이(寬永) 문화는 아직 모모야마 시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해 화려하고 웅장한 특징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시기의 문화재로는 주로 건출물들이 유명한데, 닛코의 도쇼구를 비롯하여 교토의 가쓰라리쿠가 대표적이다.
가쓰라리쿠(桂離宮)는 에도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기로 알려져 있다. 가쓰라는 교토의 남서부 지역으로서, 천천히 사행하는 가쓰라가와의 서쪽 연안에는 오래된 사찰과 진자들이 흩어져 있다. 17세기 초 35년의 세월에 걸쳐서 만들어진 가쓰라리쿠는 황족의 별장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가쓰라가와의 서쪽에 위치하며 고서원(古書院), 중서원(中書院, 신어전(新御殿) 등 세 채의 다실 양식 서원과 회유식 정원 등이 건축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다실 양식이란 원래 다도의 성행과 함께 차를 데우기 위한 전용 건축물을 지칭했지만, 뒤에는 그 건축 수법이나 형태를 가미한 건축물 일체를 지칭하게 되었다. 가쓰라리쿠 궁내를 관람하려면 궁내청의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고쿄는 그렇다 치고 교토고쇼나 가쓰라리쿠 등과 같이 황실과 관련된 유적들의 경우 궁내청의 사전 허가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보통인데, 그렇다고 관람에 특별한 자격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신청만 하면 누구에게나 허용해 주는 것을 보면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 황실에 대한 존경의 표시인 것으로 보인다.


겐로쿠(元祿) 문화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에 걸쳐 상업과 경제가 가장 활발하던 시기의 문화이다. 겐로쿠 문화의 중심이 된 것은 오사카를 비롯한 대도시들의 거상들로서 전시대에 비하면 현실적이면서 합리주의적인 특징을 보여 준다. 이 시기에는 주로 회화와 문학 쪽에서 걸출한 예술가들이 많이 나타났는데, 일본의 전통적인 통속화인 우키요에(浮世會)나 화류계를 소재로 한 통속 문학인 우키요소지(浮世草子)가 크게 유행하였다. 바이쿠(俳句)의 명인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도 이 시대의 인물이다.

마지막으로 에도 후기인 가세이(化政) 문화는 겐로쿠 문화가 여전히 상층 계급 중심의 문화였던 데 반해 에도의 죠닌들을 중심으로 대중적이고 통속적인 문화가 크게 유행한 시기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우키요에의 대가들이 다수 출현했는데, 여인화로 유명한 키타가와 우타마로(宇喜川歌磨), <東海道五十三次>, <名所江戶百景>을 그린 우타가와 히로세기(歌川廣重, 1797-1858)와 <富士山三十六景>의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齊, 1760-1849), 불과 10개월의 작품 활동 동안에 숱한 명작을 남긴 신비의 화가 도슈사이 샤라쿠(東洲齊寫樂) 등이 그들이다. 일본의 우키요에가 프랑스 인상파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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