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토 외국어 통역학원
  홈

   
 

banner
 

이름 : 관리자
제목 : 일본역사기행 (48) - 메이지 유신 (마지막회) [2005/05/25]
메이지 유신

바쿠후군을 무찌르고 에도에 무혈 입성한 천황은 1868년 8월 즉위식을 올리고 연호를 메이지로 정하였다. 이것이 메이지 유신의 시작이다. 그 후 1869년에는 에도의 이름을 도쿄로 고쳐 정식으로 수도로 선포하였다. 이로써 1,100년동안 일본의 공식 수도였던 교토의 시대도 끝나게 되었다.
이후 메이지 천황은 한세키호칸(1869년), 하이한치켄(1871년), 시민뵤도(1871년) 등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한한세키호칸(版籍奉還)은 다이묘가 지배하고 있던 토지(版)와 농민(籍)을 천황에게 다시 바친다는 의미이며, 하이한치켄(廢藩置縣)은 다이묘 중심의 행정단위인 번을 폐지하고 오늘날의 행정 단위인 현을 설치한다는 의미이다. 시민뵤도(四民平等)는 말 그대로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공식적으로 철폐한 것이다. 일본의 일반 국민들이 성(姓)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특히 국민 개병제와 함께 사무라이의 칼 휴대를 금지함으로써 무사라는 계급은 공식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사라지게 되었다.

이처럼 일본의 메이지 유신은 위로부터의 개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서구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먼저 산업혁명릏 이룩한 영국이나 프랑스 대혁명의 프랑스, 독립전쟁을 수행한 미국 등의 근대화는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사회 기층으로부터 성장해 온 시민계급의 힘에 의해서 근대로의 개혁이 추진되었다는 의미이다. 이에 반해 시민계급의 힘이 사회개혁에 이를 만큼 성장하지 못한 독일, 러시아, 일본 등에서는 국가와 봉건 기득권 계층의 주도로 근대화가 추진되었는데 이것이 위로부터의 개혁이다.
위로부터의 개혁을 추진한 독일, 러시아, 일본 등의 공통점은 시민게습의 성장에 의해 근대화가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유, 평등, 인권 등 근대 시민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적 권리들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하고 국가 중심적인 획일적, 통제적 사회체제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이들 국가는 영국이나 프랑스 등 선발 국가들과 경쟁하고 그들이 이미 점령하고 있던 식민지의 재분할을 위해 군국주의의 길을 걷게 된다. 시민계급의 성장, 시민사회의 성숙이 없는 나라는 그만큼 전체주의와 군국주의의 경향으로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그 후 볼세비키 혁명으로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이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일본이 조선침략, 만주침략, 중일전쟁을 거쳐 태평양전쟁으로 나아가게 된 데에도 이러한 근대화 과정의 한계가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도쿄 시내 하라주쿠(原宿) 근처의 조용하고 깊은 수풀 속에 자리잡고 있는 메이지진구(明治神宮)는 메이지 천황과 황후를 기념하여 세워진 신사이다. 길고 넓은 자갈길이 신사 본전으로 이어지는데 이어지며 도중에 1,700년이나 되는 삼나무로 만들어진 도리이 밑을 지나게 된다. 또 자갈길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는 6월이면 100종류 이상의 창포꽃이 만개하는 창포꽃 정원이 있다. 보물전에는 메이지 천황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우에노코엔 안에 있는 도쿄 국립 박물관에는 서양화풍으로 그려진 메이지 천황과 황비의 대형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다.
Copyright 1999-2020 Zeroboard / skin by zero